1 00:00:03.722 --> 00:00:09.972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 00:00:10.612 --> 00:00:12.589 안녕하세요 3 00:00:12.589 --> 00:00:19.931 반갑습니다,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4 00:00:19.931 --> 00:00:26.000 (이동원 목사) 여기 오신 한 분 한 분이 12제자를 지금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5 00:00:26.000 --> 00:00:31.440 오늘 우리는 12제자 가운데 특별히 사랑의 제자 혹은 사랑의 사도, 6 00:00:31.440 --> 00:00:37.000 이런 별명을 가지고 있는 요한의 이야기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7 00:00:37.450 --> 00:00:43.000 요한이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을 저술을 했을 뿐만 아니라 8 00:00:43.000 --> 00:00:49.000 ((요한복음, 요한 서신, 요한 계시록) 요한 1서 2서 3서 또한 기록한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9 00:00:49.000 --> 00:00:52.000 사도 요한의 그 사랑의 일생 10 00:00:52.000 --> 00:00:57.200 그리고 그의 가슴 속에 있었던 사랑의 메시지를 대표하고 있는 본문 11 00:00:57.200 --> 00:01:05.000 요한 1서 4:7-12의 말씀을 먼저 우리가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12 00:01:05.869 --> 00:01:09.819 (4. 요한의 집 작가 박영균) 13 00:01:10.389 --> 00:01:13.739 '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' 14 00:01:13.739 --> 00:01:16.589 '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' 15 00:01:16.589 --> 00:01:20.889 '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' 16 00:01:20.889 --> 00:01:24.850 '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' 17 00:01:24.850 --> 00:01:28.850 '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' 18 00:01:28.850 --> 00:01:32.800 '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' 19 00:01:32.800 --> 00:01:36.000 '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' 20 00:01:36.000 --> 00:01:40.539 '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' 21 00:01:40.539 --> 00:01:45.000 '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' 22 00:01:45.000 --> 00:01:47.150 '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' 23 00:01:47.150 --> 00:01:53.000 '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' 24 00:01:53.000 --> 00:01:57.587 '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' 25 00:01:57.587 --> 00:02:02.000 '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' 26 00:02:02.000 --> 00:02:04.359 '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' 27 00:02:04.359 --> 00:02:09.539 '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' 28 00:02:09.539 --> 00:02:18.239 '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' [1 John 4:7-12] 29 00:02:22.051 --> 00:02:22.901 요한(하나님의 은혜) 30 00:02:22.901 --> 00:02:25.451 주요사건: 예수님이 마리아를 부탁, 빈 무덤 발견(with 베드로), 사마리아에 물을 내릴까요? - 우레의 아들 31 00:02:25.451 --> 00:02:27.801 기록: 요한복음, 요한 서신, 요한계시록 - 밧모 섬 유배 - 사랑의 사도로 별명이 바뀜 32 00:02:27.801 --> 00:02:29.701 가족: 어머니 살로메 - 아버지 요한 - 아버지 세베대, 직업 어부 33 00:02:29.701 --> 00:02:31.651 제자 3인방: 제자들 중 막내 - 예수 품에 안긴 제자, 사랑하시는 제자 34 00:02:31.651 --> 00:02:33.501 세례(침례) 요한 제자 [요 1:35-42]: 안드레, 빌립 35 00:02:34.000 --> 00:02:37.500 (열두 사도의 삶을 배우기 원하는 CGNTV 기도 모임) 아멘, 아멘이십니까? 36 00:02:37.500 --> 00:02:41.339 ('드림온 맘' 중 열두 명의 성도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)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사랑의 장 그러면 37 00:02:41.339 --> 00:02:45.994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장이 어떤 장인가요? 38 00:02:45.994 --> 00:02:48.537 고린도 전서 13장 39 00:02:48.537 --> 00:02:51.589 그런데 사실은 고린도 전서 13장보다도 40 00:02:51.589 --> 00:02:55.539 요한일서 4장이 훨씬 더 위대한 41 00:02:55.539 --> 00:03:00.000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 사랑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42 00:03:00.000 --> 00:03:02.639 여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43 00:03:02.639 --> 00:03:07.000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44 00:03:07.000 --> 00:03:13.000 이런 사랑의 핵심적 메시지가 요한일서 4장에 들어있거든요 45 00:03:13.000 --> 00:03:19.000 오늘 우리는 먼저 사도 요한, 요한이라는 이름과 46 00:03:19.000 --> 00:03:24.000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까 47 00:03:24.000 --> 00:03:28.000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48 00:03:28.000 --> 00:03:34.000 서양사람들에게 조사를 해봤다고 해요 49 00:03:34.000 --> 00:03:40.000 서양사람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이름 50 00:03:40.000 --> 00:03:42.738 가장 흔한, 커먼한 이름들이 뭔가 51 00:03:42.738 --> 00:03:46.558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는 지금은 조금 바뀌고 있습니다만 52 00:03:46.558 --> 00:03:50.000 옛날에는 제일 많은 이름이 뭐예요? 53 00:03:50.000 --> 00:03:55.000 영자, 명자, 여기도 있나? 54 00:03:55.000 --> 00:03:59.000 우리 마누라 이름이 명자인데요 55 00:03:59.000 --> 00:04:01.000 그런 이름이 흔하잖아요 56 00:04:01.000 --> 00:04:05.449 그런데 제일 서양 사람 이름 가운데 흔한 이름이 57 00:04:05.449 --> 00:04:08.000 첫째가 요한이라고 해요, 요한 58 00:04:08.000 --> 00:04:12.000 그리고 그다음이 야고보 혹은 제임스라고 그러죠 59 00:04:12.000 --> 00:04:13.638 야고보, 제임스 60 00:04:13.638 --> 00:04:18.000 그다음에 이제 피터, 베드로 이런 순서로 많은데 61 00:04:18.000 --> 00:04:20.000 요한이 제일 많다고 해요 62 00:04:20.000 --> 00:04:23.717 그러니까 사람들이 요한이라는 이름을 제일 좋아하는 63 00:04:23.717 --> 00:04:30.438 성경에 나타난 요한의 생애가 사람들에게 남겼던 흔적, 감동 때문에 64 00:04:30.438 --> 00:04:34.608 그 이름을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65 00:04:34.608 --> 00:04:37.000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할 수가 있겠죠 66 00:04:37.000 --> 00:04:41.558 그런데 그 본래의 뜻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67 00:04:41.558 --> 00:04:43.588 이게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이에요 68 00:04:43.588 --> 00:04:45.538 God is gracious 69 00:04:45.538 --> 00:04:47.392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70 00:04:47.392 --> 00:04:49.392 그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71 00:04:49.392 --> 00:04:53.272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그는 요한복음의 저자 72 00:04:53.272 --> 00:04:56.000 (요한 복음, 요한 서신, 요한 계시록 저자) 또 요한 1서, 2서, 3서 73 00:04:56.000 --> 00:05:01.000 그리고 심지어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74 00:05:01.000 --> 00:05:06.000 그렇게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75 00:05:06.000 --> 00:05:13.172 그런데 요한복음,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에 보면 76 00:05:13.172 --> 00:05:19.000 요한이 자기 자신을 어떤 제자라고 표기했을까 77 00:05:19.000 --> 00:05:26.752 이게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도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었을 때 동양 쪽에 속해요 78 00:05:26.752 --> 00:05:32.000 그러니까 우리 동양인의 믿음 또 동양인의 어떤 겸손 79 00:05:32.000 --> 00:05:35.672 이런 것들이 아마 그분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그런지 80 00:05:35.672 --> 00:05:39.492 자기가 자기를 소개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거거든요 81 00:05:39.492 --> 00:05:46.200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이 자기를 말할 때 보통 어떻게 말하냐면 82 00:05:46.200 --> 00:05:52.292 그냥 '예수의 제자' 혹은 '예수의 사랑하는 제자' 83 00:05:52.292 --> 00:05:54.232 그럼 그게 사도 요한이에요 84 00:05:54.232 --> 00:05:59.000 또 어떤 다른 제자하고 관계해서 예수님의 다른 제자가 85 00:05:59.000 --> 00:06:05.672 이런 표기가 나올 때는 그게 다 지금 요한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86 00:06:05.672 --> 00:06:10.000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87 00:06:10.250 --> 00:06:18.250 그런데 우리가 요한의 어떤 성격, 품성을 알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88 00:06:18.250 --> 00:06:24.000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 아들의 발을 씻기죠 89 00:06:24.000 --> 00:06:30.000 예수님의 십자가를 얼마 아니 앞둔 그런 시점에서 90 00:06:30.000 --> 00:06:33.000 제 아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장면 91 00:06:33.000 --> 00:06:36.852 그리고 제 아들과 마지막 만찬을 갖는 장면 92 00:06:36.852 --> 00:06:40.292 이런 장면이 요한복음 13장에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데 93 00:06:40.292 --> 00:06:45.832 그중에 한 구절, 요한복음 13장 23절에 보시면 이런 표현이 나와요 94 00:06:45.832 --> 00:06:50.592 '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...' [요한복음 13:23] 95 00:06:50.592 --> 00:06:52.000 누구 얘기예요? 96 00:06:52.000 --> 00:06:53.272 자기 얘기죠 97 00:06:53.272 --> 00:06:57.222 예수님의 제자, 그가 사랑하는 제자가 98 00:06:57.222 --> 00:07:01.212 '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' [요한복음 13:23] 99 00:07:01.212 --> 00:07:05.312 좀 이상하잖아요, 남자가 남자 품에 이렇게 누워있다 100 00:07:05.312 --> 00:07:08.172 그래서 이런 장면에서 엉뚱한 발상을 하고 101 00:07:08.172 --> 00:07:13.100 혹시 동성애가 있었나 이런 왜곡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102 00:07:13.100 --> 00:07:15.800 그게 아니라 순결한 우정 103 00:07:15.800 --> 00:07:21.912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순수한 우정 그리고 순결한 사랑이 있을 수가 있고 104 00:07:21.912 --> 00:07:26.321 자기 스승이니까 제자로서 어리광도 부릴 수가 있잖아요 105 00:07:26.321 --> 00:07:32.732 그래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고 있는 제자 요한의 모습, 사도 요한의 모습 106 00:07:32.732 --> 00:07:35.552 아주 인상적인 그런 장면이죠 107 00:07:36.000 --> 00:07:42.000 그렇게 자기 스승 앞에 스킨십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정도의 108 00:07:42.000 --> 00:07:49.732 어떤 사랑의 감성이 넘쳐나고 있었던 제자가 바로 사도 요한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거든요 109 00:07:51.882 --> 00:07:55.182 이제 요한복음의 거의 마지막 부분 110 00:07:55.182 --> 00:07:58.17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다음에 부활하셨어요 111 00:07:58.172 --> 00:08:03.552 부활하신 후에 이제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112 00:08:04.802 --> 00:08:09.352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만나주신 사람이 113 00:08:09.352 --> 00:08:13.852 남자 제자들이 아니라 여성 제자, 114 00:08:13.852 --> 00:08:17.412 막달라 마리아를 제일 먼저 만나주셨어요 115 00:08:19.372 --> 00:08:28.532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이 소식을 자기 눈으로 확인했을 때 116 00:08:28.532 --> 00:08:31.000 얼마나 이것이 충격이었겠어요 117 00:08:31.000 --> 00:08:37.000 그런데 이런 충격을 먹고 마리아가 성경에 보시면 118 00:08:37.000 --> 00:08:43.752 "마리아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다른 제자에게로 달려가..." [요한복음 20:2] 119 00:08:43.752 --> 00:08:45.192 누굴까요, 그게? 120 00:08:45.192 --> 00:08:46.152 요한이죠 121 00:08:46.152 --> 00:08:48.552 마리아가 요한에게 알리는 거예요 122 00:08:48.552 --> 00:08:51.792 예수님 부활하셨다고, 아느냐고 123 00:08:51.792 --> 00:08:56.532 내가 직접 만났다고, 그분은 정말 부활하셨다고 124 00:08:56.532 --> 00:09:00.431 마리아가 그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것이 요한이었어요 125 00:09:00.431 --> 00:09:04.812 어쩌면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관계 126 00:09:04.812 --> 00:09:08.472 또 늘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던 이 제자에게 127 00:09:08.472 --> 00:09:15.252 그 소식을 마리아가 먼저 알리고 싶어 했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겠죠 128 00:09:15.252 --> 00:09:19.872 그런데 그다음 구절을 보시면 129 00:09:19.872 --> 00:09:21.272 '그 다른 제자...'[요한복음 20:3] 130 00:09:21.272 --> 00:09:25.512 즉 요한이 마리아가 전해주는 부활의 소식을 듣고 131 00:09:25.512 --> 00:09:27.000 그다음에 이런 말이 있어요 132 00:09:27.000 --> 00:09:33.632 '...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' [요한복음 20:3] 133 00:09:33.632 --> 00:09:38.392 요한과 베드로는 약간의 라이벌 의식도 있어요 두 사람이 134 00:09:38.392 --> 00:09:43.872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, 무덤에 있었던 그분이 135 00:09:43.872 --> 00:09:47.112 이 기막힌 소식, 놀라운 소식을 듣고 136 00:09:47.112 --> 00:09:52.000 요한이, 옆에 베드로도 그 소식을 들었단 말이죠 137 00:09:52.000 --> 00:09:55.512 그런데 베드로에게 질세라 요한이 먼저 달려갔다 138 00:09:55.512 --> 00:09:58.632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, 요한복음이니까 139 00:09:58.632 --> 00:10:06.212 그래서 무덤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라는 성경의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140 00:10:06.212 --> 00:10:10.712 그뿐만 아니라 또 이제 갈릴리바다에서 141 00:10:13.062 --> 00:10:21.500 누군가가, 지금 제자들이 아직도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지 못하고 142 00:10:21.500 --> 00:10:26.600 그 후에 어떤 허탈감, 좌절감, 낙심 속에 빠져서 143 00:10:26.600 --> 00:10:28.392 베드로가 선동했어요 144 00:10:28.392 --> 00:10:30.412 옛날처럼 우리 물고기나 잡자 145 00:10:30.412 --> 00:10:35.512 제자들의 제일 많은 직업이 뭐였습니까? 146 00:10:35.512 --> 00:10:37.000 어부들이었잖아요 147 00:10:37.000 --> 00:10:40.872 옛날처럼 우리 물고기나 잡으러 가자 148 00:10:40.872 --> 00:10:45.232 그리고 물고기 잡았는데 안 잡히는 거예요 149 00:10:45.232 --> 00:10:47.512 그랬을 때 누군가가 나타났어요 150 00:10:47.512 --> 00:10:53.000 그러면서 오른쪽으로 한번 그물을 던져보라고 151 00:10:53.000 --> 00:10:57.750 누군지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 말씀 앞에 복종하고 싶어서 152 00:10:57.750 --> 00:11:00.132 그렇게 한번 그물을 던졌단 말이죠 153 00:11:00.132 --> 00:11:04.000 그런데 놀랍게도 고기들이 막 잡혀요 154 00:11:04.000 --> 00:11:08.500 그 장면 속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그분 155 00:11:08.500 --> 00:11:13.862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시다라 는 것을 알아차린 제자 누구였을까요? 156 00:11:14.612 --> 00:11:19.352 요한이니까 제가 물어보겠죠 157 00:11:19.352 --> 00:11:21.352 주님이시다 158 00:11:21.352 --> 00:11:23.232 틀림없이 주님이시다 159 00:11:23.232 --> 00:11:24.704 그걸 알아봤어요 160 00:11:24.704 --> 00:11:28.512 ([요한복음 21:7]) "그런데 이번에는 알아본 것은 요한이 먼저 알아보고" 161 00:11:28.512 --> 00:11:32.012 ([요한복음 21:7]) "물속으로 점프해서 들어간 건 베드로가 먼저 들어갔어요" 162 00:11:32.012 --> 00:11:35.252 어쨌든 주님이시다 163 00:11:35.252 --> 00:11:40.252 그렇게 주님이심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164 00:11:40.252 --> 00:11:42.392 자기의 마음을 열었던 제자 165 00:11:42.392 --> 00:11:46.838 그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66 00:11:46.838 --> 00:11:52.072 그런데 어떻게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? 167 00:11:53.372 --> 00:11:56.492 요한복음 1장에 보시면 168 00:11:58.442 --> 00:12:05.392 사도 요한이 맨 처음 메시아에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을 들은 것은 169 00:12:05.392 --> 00:12:09.592 ([요한복음 1:35-37]) 세례 요한을 통해서 들었다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170 00:12:09.592 --> 00:12:17.000 세례 요한이 이제 오실 예수님, 메시아, 구세주 171 00:12:17.000 --> 00:12:22.000 그분에 대해서 외쳤던 대표적인 메시지가 무슨 메시지였습니까? 172 00:12:22.000 --> 00:12:28.273 '...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' [요한복음 1:29] 173 00:12:28.273 --> 00:12:31.323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174 00:12:31.323 --> 00:12:38.000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는 속죄의 주님이 되셨다 175 00:12:38.000 --> 00:12:41.492 그 소식을 통해서 메시아의 소식을 들었어요 176 00:12:41.492 --> 00:12:44.000 구체적으로 들은 거예요 177 00:12:44.000 --> 00:12:48.400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 178 00:12:48.400 --> 00:12:52.332 그분이 우리가 기다려왔던 메시아임을 믿게됩니다 179 00:12:55.332 --> 00:13:01.432 그 소식을 제일 먼저 듣고 180 00:13:03.432 --> 00:13:07.132 그 분이 그리스도라면 181 00:13:07.132 --> 00:13:13.000 나는 그분을 더 가까이서 만나서 그분을 알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었겠죠 182 00:13:13.000 --> 00:13:19.192 그래서 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183 00:13:19.192 --> 00:13:21.000 안드레와 요한이 함께 184 00:13:21.000 --> 00:13:24.812 안드레라는 또 다른,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죠 그쵸? 185 00:13:24.812 --> 00:13:27.492 그래서 따라갑니다 186 00:13:27.492 --> 00:13:29.692 따라가니까 예수님이 돌아보시면서 187 00:13:29.692 --> 00:13:31.652 안드레와 요한에게 188 00:13:31.652 --> 00:13:37.272 (예수님) "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?" 라고 물어보셨어요 189 00:13:37.272 --> 00:13:39.712 그때 요한이 이런 대답을 합니다 190 00:13:39.712 --> 00:13:42.752 (사도 요한) "선생님, 어디에 사십니까?" 191 00:13:42.752 --> 00:13:45.612 서빙고에 사세요? 192 00:13:45.612 --> 00:13:47.512 어디 사십니까? 라고 물었어요 193 00:13:47.512 --> 00:13:52.592 그건 왜냐하면, 저분은 내가 한 번 만나고 그만둘 분이 아니다 194 00:13:52.592 --> 00:13:56.715 어쩌면 예수님과 계속 만나고 싶어하는 195 00:13:56.715 --> 00:13:59.715 그분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어하는 어떤 갈망 196 00:13:59.715 --> 00:14:04.092 그런 갈망 때문에 거기서 만남이 이루어져요 197 00:14:04.092 --> 00:14:07.000 그래서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198 00:14:07.000 --> 00:14:11.832 그때부터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죠 199 00:14:11.832 --> 00:14:16.882 그러니까 예수님이 구세주다, 메시아다 라는 메시지를 듣고 200 00:14:16.882 --> 00:14:21.712 그분을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그분을 따라가기 시작한 만남 201 00:14:21.712 --> 00:14:29.000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,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죠 202 00:14:29.000 --> 00:14:31.950 우리가 성경에 보시면 203 00:14:31.950 --> 00:14:37.372 요한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장면 하나가 있어요 204 00:14:37.372 --> 00:14:39.572 요한의 형제가 있었죠 205 00:14:39.572 --> 00:14:41.592 그 형제가 누굽니까? 206 00:14:41.592 --> 00:14:42.892 야고보에요, 야고보 207 00:14:42.892 --> 00:14:47.452 세배대의 아들,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나와요 208 00:14:47.452 --> 00:14:50.000 세배대의 아들, 야고보와 요한 209 00:14:50.000 --> 00:14:55.832 그런데 이 형제가 똑같은 별명을 부여받았어요 210 00:14:55.832 --> 00:14:57.572 그 별명이 뭐였습니까? 211 00:14:57.572 --> 00:14:59.474 우레의 아들 212 00:14:59.474 --> 00:15:04.872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천둥의 아들, 벼락의 아들 뭐 이런 213 00:15:04.872 --> 00:15:09.192 어떤 천둥, 벼락 같은 그런 어떤 격정적인 성격 214 00:15:09.192 --> 00:15:13.392 아마 이런것 때문에 그런 별명이 주어졌을 거예요 215 00:15:14.292 --> 00:15:20.252 이런 격정적인 성격을 가진 그가 어떻게 사랑의 사도가 되었을까 216 00:15:20.252 --> 00:15:26.362 사실 격정이라는 것은 이모션이죠, 딥 이모션 217 00:15:26.362 --> 00:15:33.250 이게 다스려지지 않으면 아주 파괴적인 그런 감정의 소유자가 될 수가 있지만 218 00:15:33.250 --> 00:15:37.600 이 감정이 잘 다스려지면, 다듬어지면 219 00:15:37.600 --> 00:15:42.728 그것이 아주 깊은 사랑, 깊은 애정의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거죠 220 00:15:42.728 --> 00:15:45.496 그런데 바로 요한이 그런 케이스에 속해요 221 00:15:45.496 --> 00:15:47.996 그는 격정적 감정의 사람이지만 222 00:15:47.996 --> 00:15:52.000 예수님 만나고 또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223 00:15:52.300 --> 00:15:54.950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224 00:15:54.950 --> 00:15:57.459 그리고 그의 이웃들을 사랑하는 225 00:15:57.459 --> 00:16:01.358 그래서 마침내 "형제들아,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" [요한 1서 4:7] 226 00:16:01.358 --> 00:16:08.000 이런 위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사랑의 사도로 그가 변화되어 갔다 227 00:16:08.000 --> 00:16:11.512 인격적 변화예요 228 00:16:11.512 --> 00:16:17.462 그의 마음 속에 그런 감정, 우레 같은, 격정적인 감정 229 00:16:17.462 --> 00:16:21.916 또 그 감정 때문에 예수님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230 00:16:21.916 --> 00:16:27.021 예수님의 품에 자기의 머리를 기대던 사람 231 00:16:27.021 --> 00:16:30.632 그러나 그는 마침내 주님의 사랑을 깊이 받았고 232 00:16:30.632 --> 00:16:34.632 그 사랑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사람 233 00:16:34.632 --> 00:16:38.232 요한복음 13장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에 보시면 234 00:16:38.232 --> 00:16:45.000 13장 34-35절에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전한 사람도 사도 요한이에요 235 00:16:45.000 --> 00:16:49.332 '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...' 236 00:16:49.332 --> 00:16:53.000 '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...' [요한복음 13:34] 237 00:16:53.000 --> 00:16:55.484 왜 그게 새로운 계명일까요? 238 00:16:55.484 --> 00:16:58.000 그때 처음 그 말씀을 주셨을까? 239 00:16:58.000 --> 00:17:02.412 한 성경학자는 "아니, 옛날에도 구약에도 그런 말씀이 있었지만" 240 00:17:02.412 --> 00:17:07.832 "이 명령은 날마다 새롭게 순종 돼야 할 명령이다" 241 00:17:07.832 --> 00:17:11.692 "그래서 새로운 명령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" [요 13:34 '새 계명'] 242 00:17:11.692 --> 00:17:13.945 이 말씀을 요한이 전하게 되는 거예요 243 00:17:13.945 --> 00:17:17.512 뿐만 아니라 또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시면 244 00:17:17.512 --> 00:17:23.112 '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...' 245 00:17:23.112 --> 00:17:26.632 "내가 그에게 또한 나 자신을 나타내리라" [요한복음 14:21] 246 00:17:26.632 --> 00:17:31.112 그러니까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다 247 00:17:31.112 --> 00:17:36.000 그분을 경험하고 또 그분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248 00:17:36.000 --> 00:17:42.612 이런 사건을 자기의 전 일생을 통해서 전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이다 249 00:17:42.612 --> 00:17:45.172 열정적인 사랑의 사도 250 00:17:45.172 --> 00:17:50.283 또 사랑을 나중에 행동으로 드러내었던 사람 251 00:17:50.283 --> 00:17:58.530 그리고 마침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인격으로 잘 성화되어 갈 수 있었던 제자 252 00:17:58.530 --> 00:18:00.192 그가 요한이다 253 00:18:00.192 --> 00:18:05.014 성경학자들은 요한의 캐럭터, 인물을 연구하면서 254 00:18:05.014 --> 00:18:07.514 그는 사랑의 사람이지만 255 00:18:07.514 --> 00:18:09.364 여러 가지 측면에서 256 00:18:09.364 --> 00:18:14.832 인격적인 균형, 밸런스를 잘 형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증언합니다 257 00:18:14.832 --> 00:18:18.572 어떤 균형이냐, 예를 들어서 사랑과 진리의 균형 258 00:18:18.572 --> 00:18:23.844 어떤 사람 보면 사랑은 많은데 진리가 없어 259 00:18:23.844 --> 00:18:29.489 그럼 그 사랑은 아주 싸구려 감상적인 사랑이 될 수밖에 없죠 260 00:18:29.489 --> 00:18:34.732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진리는 아주 잘 알고 가르치는데 사랑이 없어 261 00:18:34.732 --> 00:18:37.039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어요? 262 00:18:37.039 --> 00:18:39.795 진리만 강조하고 사랑이 없어 263 00:18:39.795 --> 00:18:44.450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 진리가 자꾸 일을 질리게 하잖아 264 00:18:45.432 --> 00:18:47.192 그렇죠? 265 00:18:47.192 --> 00:18:50.563 그래서 진리와 사랑의 밸런스, 균형 266 00:18:50.563 --> 00:18:53.000 이 균형은 얼마나 필요한 거예요 267 00:18:53.000 --> 00:18:59.272 그런데 요한은 진리를 가르치면서 사랑의 그릇에 담아서 가르쳤던 사람 268 00:18:59.272 --> 00:19:02.512 그는 처음에 굉장한 야망의 사람이었어요 269 00:19:02.512 --> 00:19:07.000 하지만 그는 점차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270 00:19:07.000 --> 00:19:09.552 야망과 겸손의 균형 271 00:19:09.552 --> 00:19:15.652 그리고 마침내 그는 주님의 영광 속에 들어갑니다 272 00:19:15.652 --> 00:19:20.572 그러나 영광 속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상당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273 00:19:20.572 --> 00:19:23.472 고난과 영광의 균형 274 00:19:23.472 --> 00:19:32.372 우리는 요한의 생애를 아주 중요한 사역이 펼쳐진 세 도시를 생각해 볼 수가 있어요 275 00:19:32.372 --> 00:19:34.552 (요한의 사역 도시) 첫째는 예루살렘이에요 276 00:19:34.552 --> 00:19:36.000 우리가 사도행전에 보면 277 00:19:36.000 --> 00:19:39.502 베드로와 요한이, 요한과 베드로가 278 00:19:40.102 --> 00:19:46.492 전도를 많이 하고 예루살렘을 바꾸는 이래 활동했던 무대가 예루살렘이고요 279 00:19:46.492 --> 00:19:50.031 (요한의 사역 도시) 그 후에 그는 에베소로 갑니다, 에베소 280 00:19:50.031 --> 00:19:57.681 에베소에서 그 당시에 새로운 로마라고 불리워지는 에베소 사역을 펼쳐가면서 281 00:19:57.681 --> 00:20:00.713 아시아의 복음화를 시도합니다 282 00:20:00.713 --> 00:20:07.732 성지순례를 할 때 에베소라는 데 가보시면 거기에 마리아의 집이 있어요 283 00:20:07.732 --> 00:20:12.000 아니 왜 마리아의 집이,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여기에 있을까 284 00:20:12.000 --> 00:20:20.552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에 자기 어머니가 마음에 생각이 나셨죠 285 00:20:20.552 --> 00:20:26.000 그 어머니를 제자 중 누군가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286 00:20:26.000 --> 00:20:28.172 누구에게 부탁을 했습니까? 287 00:20:28.172 --> 00:20:31.000 요한에게, 왜 그랬을까요? 288 00:20:31.000 --> 00:20:34.552 제자 중에 제일 오래 살았으니까, 예수님은 그걸 아셨어요 289 00:20:34.552 --> 00:20:39.000 제일 오래 살 제자에게 '보라 네 어머니라' [요한복음 19:27] 290 00:20:39.000 --> 00:20:41.752 나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네 어머니다 291 00:20:41.752 --> 00:20:44.000 그렇게 모시고 간 거예요 292 00:20:44.000 --> 00:20:51.672 그래서 에베소에서 전 소아시아를 상대로 사역하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았던 장소 293 00:20:51.672 --> 00:20:54.455 거기에 마리아의 집이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어요 294 00:20:54.455 --> 00:20:59.092 (요한의 사역 도시) 그리고 마지막으로 밧모섬,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던 295 00:20:59.092 --> 00:21:06.532 잠시 에베소에서 체포되어 밧모섬에 가서 유배지에서 유배 생활을 합니다 296 00:21:06.532 --> 00:21:12.172 바로 그때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죠 297 00:21:12.172 --> 00:21:14.000 그리고 풀려나와요 298 00:21:14.000 --> 00:21:18.292 제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순교당하지 않고 풀려나와요 299 00:21:18.292 --> 00:21:20.280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요 300 00:21:20.280 --> 00:21:25.232 그래서 에베소 도시에서 마지막 사역을 하면서 늘 똑같은 설교를 했다고 해요 301 00:21:25.232 --> 00:21:28.000 (사도요한) "소자들아!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!" 302 00:21:28.000 --> 00:21:30.692 지난주에도 설교하셨는데요 303 00:21:31.542 --> 00:21:32.812 새로운 설교 없으십니까? 304 00:21:32.812 --> 00:21:35.000 그럼 새로운 설교하지 305 00:21:35.000 --> 00:21:38.000 (사도요한) "소자들아! 서로 사랑하라!" 306 00:21:38.000 --> 00:21:44.000 그렇게 마지막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307 00:21:44.000 --> 00:21:47.000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 308 00:21:47.000 --> 00:21:50.392 '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...' [요한복음 3:16] 309 00:21:50.392 --> 00:21:52.632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셨고 310 00:21:52.632 --> 00:21:55.000 요한복음 3장 16절뿐만 아니라 311 00:21:55.000 --> 00:21:58.324 요한 1서 3장 16절도 중요해요 312 00:21:58.324 --> 00:21:59.632 그게 뭐예요? 313 00:21:59.632 --> 00:22:02.479 '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314 00:22:02.479 --> 00:22:07.461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' [요한1서 3:16] 315 00:22:07.461 --> 00:22:15.652 저는 요한 1서 3장 16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316 00:22:15.652 --> 00:22:18.172 누가 이 말씀을 하셨어요? 317 00:22:18.172 --> 00:22:19.543 요한 318 00:22:19.543 --> 00:22:27.000 그래서 제자 요한, 그는 나중에 보냄 받아 사랑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다했던 사람 319 00:22:27.000 --> 00:22:33.272 그분을 마땅히 우리도 따라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? 320 00:22:33.272 --> 00:22:36.612 -자 요한의 이야기가 감동이 되시나요? -네 321 00:22:36.612 --> 00:22:39.612 이번에는 제자 빌립입니다 322 00:22:39.612 --> 00:22:42.392 빌립에 관해서 이런 별명이 있어요 323 00:22:42.392 --> 00:22:47.000 그는 신중한 완벽주의 사도 324 00:22:47.000 --> 00:22:51.000 신중한 완벽주의 사도 빌립 325 00:22:51.000 --> 00:22:55.803 빌립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 326 00:22:55.803 --> 00:23:00.252 요한복음 1장 43-45절 인데 327 00:23:00.252 --> 00:23:07.000 그 장면을 증거하는 말씀을 먼저 우리가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328 00:23:14.652 --> 00:23:20.312 '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' 329 00:23:20.312 --> 00:23:22.292 '나를 따르라 하시니' 330 00:23:22.292 --> 00:23:27.272 '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한 동네 뱃새다 사람이라' 331 00:23:27.272 --> 00:23:30.000 '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' 332 00:23:30.000 --> 00:23:32.632 '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' 333 00:23:32.632 --> 00:23:36.452 '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' 334 00:23:36.452 --> 00:23:43.752 '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' [요한복음 1:43-45] 335 00:23:59.832 --> 00:24:03.152 예수님의 제자가 모두 몇 명이에요? 336 00:24:03.152 --> 00:24:05.512 열두 제자 337 00:24:05.512 --> 00:24:09.522 열둘이라는 숫자는 대표 숫자 338 00:24:09.522 --> 00:24:14.352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지파가 몇 지파예요? 339 00:24:14.352 --> 00:24:15.470 열두 지파 340 00:24:15.470 --> 00:24:17.272 신약에서는 몇 제자? 341 00:24:17.272 --> 00:24:18.832 열두 제자 342 00:24:18.832 --> 00:24:24.173 나중에 요한계시록 거의 마지막 부분 21장에 보시면 343 00:24:24.173 --> 00:24:27.692 새 하늘, 새 땅, 새 예루살렘을 보았을 때 344 00:24:27.692 --> 00:24:33.000 거기에 열두 돌이 있었고 보석이 있었고 열두 문이 있고 345 00:24:33.000 --> 00:24:38.000 거기에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었다 346 00:24:38.000 --> 00:24:41.252 그 열둘이 대표 숫자인데 347 00:24:41.252 --> 00:24:51.000 그 열두 제자는 모든 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그런 열두 제자라고 볼 수가 있어요 348 00:24:51.000 --> 00:24:56.571 열두 제자를 다시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349 00:24:56.571 --> 00:25:02.432 그러니까 4명씩, 4명, 4명 이렇게 하면 세 그룹이 되겠죠 350 00:25:02.432 --> 00:25:05.592 첫째그룹은, 첫째 그룹은 누구냐 하면 351 00:25:05.592 --> 00:25:10.000 베드로와 안드레, 이 둘이 형제죠 그렇죠? 352 00:25:10.000 --> 00:25:14.000 그리고 또 하나 야고보와 요한, 형제예요 353 00:25:14.000 --> 00:25:17.185 그런데 이 네 사람은 다 직업이 똑같아요, 뭐였을까요? 354 00:25:17.185 --> 00:25:18.387 어부예요 355 00:25:18.387 --> 00:25:25.055 그래서 어부 가문끼리 아마 고기를 잡으면서 서로 잘 알게 되지 않았을까 356 00:25:25.055 --> 00:25:26.555 그래서 이게 첫 번째 그룹이에요 357 00:25:26.555 --> 00:25:29.493 베드로, 안드레, 야고보, 요한 358 00:25:29.493 --> 00:25:33.193 그중에 리더 역할을 했던 건 베드로죠 359 00:25:33.193 --> 00:25:37.672 물론 열두 제자 전체를 대표하는 리더가 또 베드로였다고 할 수가 있고요 360 00:25:37.672 --> 00:25:40.767 그다음에 두 번째 그룹이 누구냐 하면 361 00:25:40.767 --> 00:25:45.633 오늘 이 두 번째 그룹을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362 00:25:45.633 --> 00:25:51.312 빌립, 바돌로매 그다음에 도마와 마태 363 00:25:51.312 --> 00:25:54.000 이걸 두 번째 그룹이라고 할 수 있어요 364 00:25:54.000 --> 00:26:00.000 두 번째 그룹의 리더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빌립이다 365 00:26:00.000 --> 00:26:02.444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366 00:26:02.444 --> 00:26:06.272 오늘 빌립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때문에 367 00:26:06.272 --> 00:26:08.831 제가 이 두 번째 그룹을 소개한 것입니다 368 00:26:08.831 --> 00:26:13.572 물론 세 번째 그룹은 나머지, 나머지 네 제자, 남은 네 제자 369 00:26:13.572 --> 00:26:15.420 누가 남았습니까? 370 00:26:15.420 --> 00:26:18.233 작은 야고보라는 제자가 있어요 371 00:26:18.233 --> 00:26:22.552 또 다대오 유다라고 있습니다, 다대오 유다 372 00:26:22.552 --> 00:26:25.466 또 시몬 그리고 마지막에 가룟 유다 373 00:26:25.466 --> 00:26:28.761 이렇게 네 제자가 남았습니다 374 00:26:28.761 --> 00:26:33.768 오늘 우리는 빌립이라는 사도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375 00:26:34.318 --> 00:26:36.492 그의 이름이 가진 의미 376 00:26:36.492 --> 00:26:42.000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까 377 00:26:42.000 --> 00:26:46.465 우선 빌립, 필립 보, 혹은 필립 378 00:26:46.465 --> 00:26:50.000 이렇게 영어로는 또 부르는데 379 00:26:50.000 --> 00:26:57.521 그 빌립이라는 이름은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아주 흔한 이름이에요 380 00:26:57.521 --> 00:26:59.872 왜 흔했냐면 381 00:26:59.872 --> 00:27:03.732 그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 누구냐면 382 00:27:03.732 --> 00:27:08.372 그 당시로서는 예수님이 아니고 알렉산더였어요, 알렉산더 대왕 383 00:27:08.372 --> 00:27:13.752 알렉산더 대왕이 거의 전 세계를 다 정복하다시피 했잖아요 384 00:27:13.752 --> 00:27:18.441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가 바로 필립이에요 385 00:27:18.441 --> 00:27:24.449 그런데 우리 동양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유명한 사람을 흠모하고 386 00:27:24.449 --> 00:27:29.000 또 자식이 나면 유명한 사람처럼 되기를 원하고 387 00:27:29.000 --> 00:27:32.172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르는 경향이 있어요 388 00:27:32.172 --> 00:27:35.792 그러다 보니까 필립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많았던 거예요 389 00:27:35.792 --> 00:27:39.592 문자 그대로는 필립이라는 말이 홀스러버 390 00:27:39.592 --> 00:27:42.366 그래서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391 00:27:42.366 --> 00:27:43.492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392 00:27:43.492 --> 00:27:51.152 아마 굉장히 알렉산더도 그렇고 그 아버지도 말을 잘 타서 그러지 않았을까 393 00:27:51.152 --> 00:27:53.772 뭐 이런 상상도 해봐요 394 00:27:53.772 --> 00:28:01.412 어쨌든 그러한 배경에서 필립이라는 이름이 이 제자에게 주어졌는데 395 00:28:01.412 --> 00:28:07.000 자기 아들을 필립이라고 이름을 지은 그 가정은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어요 396 00:28:07.000 --> 00:28:10.832 아주 전통적인 유대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397 00:28:10.832 --> 00:28:16.352 전통적인 유대인은 필립이라는 이름이 이방 이름이에요 398 00:28:16.352 --> 00:28:22.152 이방 지역의 이름이기 때문에 전통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399 00:28:22.802 --> 00:28:28.421 자기 나라하고 상관이 없는 외국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죠 400 00:28:28.421 --> 00:28:32.187 그래서 아마 전통적인 유대인 가문은 아니고 401 00:28:32.187 --> 00:28:39.000 상당히 외부 문물에 관해서 개방적인, 오픈된 그런 가정이었기 때문에 402 00:28:39.000 --> 00:28:42.192 그 아들의 이름을 필립이라고 지지 않았을까 403 00:28:42.192 --> 00:28:51.455 그런데 어떻게 필립 가정은 그리고 필립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처음에 들었을까 404 00:28:51.455 --> 00:28:57.232 우리가 성경에 보시면 요한복음 1장 44절 우리가 읽었던 말씀에 나와 있어요 405 00:28:57.232 --> 00:29:09.261 '빌립은 안드레, 베드로와 한 동네의 벳새다 사람이라' [요한복음 1:44] 406 00:29:09.261 --> 00:29:11.392 갈릴리의 벳새다 사람 407 00:29:11.392 --> 00:29:18.000 빌립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안드레와 베드로는 형제잖아요 408 00:29:18.000 --> 00:29:22.112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가 예수님을 먼저 만난 거예요 409 00:29:22.112 --> 00:29:27.632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확신을 안드레가 제일 먼저 가졌어요 410 00:29:27.632 --> 00:29:35.000 그리고 안드레가 자기 형님 베드로에게 내가 메시아를 만났어 하고 소개를 한 거란 말이죠 411 00:29:35.000 --> 00:29:38.000 그런데 같은 동네에 누가 살았다? 412 00:29:38.000 --> 00:29:40.000 빌립이 살았다고 했잖아요 413 00:29:40.000 --> 00:29:45.550 그러니까 틀림없이 아마 안드레와 베드로를 통해서 빌립은 414 00:29:45.550 --> 00:29:54.000 메시아이신 예수님, 그리스도이신 예수님, 구세주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처음에 들었을 거예요 415 00:29:54.000 --> 00:29:57.492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416 00:29:57.492 --> 00:30:05.811 나중에 빌립이 정말 메시아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너무나 자기도 감격해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요 417 00:30:05.811 --> 00:30:09.775 빌립이 찾아간 사람이 누구냐 하면 나다나엘이었어요 418 00:30:09.775 --> 00:30:13.000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419 00:30:13.000 --> 00:30:19.000 "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바로 그분, 그분을 내가 만났다" [요한복음 1:45] 420 00:30:19.000 --> 00:30:24.000 모세가 율법에서부터 증거했던 메시아 그분을 내가 만났다 421 00:30:24.000 --> 00:30:29.000 빌립이 확신하니까 그렇게 증거했을 거란 말이죠 422 00:30:29.000 --> 00:30:35.512 그러니까 빌립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확신하는 거죠 423 00:30:35.512 --> 00:30:40.772 그런데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에 있어서는 424 00:30:40.772 --> 00:30:46.232 요한복음 1장에 보시면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빌립을 만나요 425 00:30:46.232 --> 00:30:49.592 예수님과 빌립의 우연한 만남 426 00:30:49.592 --> 00:30:52.492 물론 이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겠죠 427 00:30:52.492 --> 00:30:55.272 하지만 예수님이 빌립을 만나셨어 428 00:30:55.272 --> 00:30:58.752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시는고 하니 429 00:30:58.752 --> 00:31:01.212 '나를 따르라' [요한복음 1:43] 430 00:31:01.212 --> 00:31:06.347 그런데 성경은 그 말을 듣고 따라갔다 431 00:31:06.347 --> 00:31:09.332 그런데 어떻게 나를 따르라 한 마디 말 듣고 432 00:31:09.332 --> 00:31:12.212 어떻게 그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433 00:31:12.212 --> 00:31:14.532 빌립이 따라갈 수가 있었을까 434 00:31:14.532 --> 00:31:18.982 그런데 성경은 간략하게 기록하고 그 배경을 생략했지만 435 00:31:18.982 --> 00:31:23.832 아마 이미 빌립은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있었을 거예요 436 00:31:23.832 --> 00:31:26.048 누구를 통해서? 437 00:31:26.048 --> 00:31:32.954 안드레, 베드로 같은 동네에 살던 먼저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거예요 438 00:31:32.954 --> 00:31:36.372 그리고 마음에 궁금함이 있었겠죠 439 00:31:36.372 --> 00:31:39.812 그도 성경을 읽고 있었던 사람이고 구약을 440 00:31:39.812 --> 00:31:42.392 메시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단 말이죠 441 00:31:42.392 --> 00:31:45.676 예수가 메시아라고? 그런데 그분이 나타난 거예요 442 00:31:45.676 --> 00:31:49.912 그리고 딱 빌립을 째려보시더니 나를 따르라 443 00:31:49.912 --> 00:31:52.712 그러니까 따라갔다 이렇게 말합니다 444 00:31:52.712 --> 00:31:56.232 저는 이것이 뭐냐 하면 조금 이따 말씀드리겠지만 445 00:31:56.232 --> 00:32:00.000 예수님이 빌립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신 거예요 446 00:32:00.000 --> 00:32:03.438 그리고 정확한 도전을 한 것입니다 447 00:32:03.438 --> 00:32:07.000 제가 처음에 빌립의 성격은 어떤 성격이라고 했어요? 448 00:32:07.000 --> 00:32:10.872 신중한 완벽주의자 449 00:32:10.872 --> 00:32:15.429 이런 사람들은 계속 재고 생각하고 따질 거 아니에요 450 00:32:15.429 --> 00:32:19.029 그러니까 빌립 보고 너 생각해 보고 나를 따라와 그러면 451 00:32:19.029 --> 00:32:22.000 빌립은 평생 생각만 했을 거예요 452 00:32:22.000 --> 00:32:25.492 아시고 나를 따라와 도전하신 거예요 453 00:32:25.492 --> 00:32:28.000 이 도전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거예요 454 00:32:28.000 --> 00:32:33.000 그리고 그로하여 예수님을 따라가는 결단을 하게 만든 것이에요 455 00:32:33.000 --> 00:32:39.812 우리가 빌립의 성격, 그 성격을 보면 456 00:32:39.812 --> 00:32:42.932 요한복음 14장에 우선 이런 장면이 나와요 457 00:32:42.932 --> 00:32:45.232 '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' 458 00:32:45.232 --> 00:32:48.326 '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' [요한복음 14:6] 459 00:32:48.326 --> 00:32:51.240 그 장면에서 빌립이 딱 튀어나와요 460 00:32:51.240 --> 00:32:56.078 '...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' [요한복음 14:8] 461 00:32:56.078 --> 00:32:59.633 증거 있어요? 나는 증거 없으면 못 믿어요 462 00:32:59.633 --> 00:33:03.760 이렇게 확인하고 싶어 했던 성격이 빌립이었단 말이죠 463 00:33:03.760 --> 00:33:11.000 자, 그런 빌립은 어떻게 사역을 마무리하고 하나님 앞에 갔을까? 464 00:33:11.000 --> 00:33:14.000 우선 요한복음에도 빌립이 나오고 465 00:33:14.000 --> 00:33:16.579 사도행전에도 빌립이 나오는데, 달라요 466 00:33:16.579 --> 00:33:19.240 사도행전의 빌립은 집사 빌립이고요 467 00:33:19.240 --> 00:33:23.000 요한복음의 빌립이 사도 빌립, 제자 빌립이에요 468 00:33:23.000 --> 00:33:25.240 그는 나중에 소아시아로 갑니다 469 00:33:25.240 --> 00:33:28.680 라오디게아 생각나시죠? 성경에 470 00:33:28.680 --> 00:33:33.000 골로새, 또 히에라폴리스라고 있어요 471 00:33:33.000 --> 00:33:39.180 우리가 지금 터키로 성지순례 가면 파묵칼레라는 석회함의 도시가 있습니다 472 00:33:39.180 --> 00:33:46.000 거기 히에라폴리스에 가면 사도 빌립의 순교 기념터가 남아있어요 473 00:33:46.000 --> 00:33:48.000 그 터가 남아있어요 474 00:33:48.000 --> 00:33:51.000 그는 그리스에도 갔고 프랑스에도 갔지만 475 00:33:51.000 --> 00:33:57.542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에서 마지막 순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476 00:33:57.542 --> 00:34:03.499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레슨을 제가 요약해보자면 477 00:34:03.499 --> 00:34:06.549 그는 좋은 친구가 옆에 있었어요, 항상 478 00:34:06.549 --> 00:34:08.399 그것이 그의 신앙에 도움을 주었어요 479 00:34:08.399 --> 00:34:09.999 안드레 같은 사람 480 00:34:09.999 --> 00:34:13.299 나중에는 나다나엘 항상 같이 나와요 481 00:34:13.299 --> 00:34:18.675 또 그는 의심이 있었지만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482 00:34:18.675 --> 00:34:23.000 그 질문을 통해서 자기 신앙의 실체를 확인하는 거예요 483 00:34:23.000 --> 00:34:25.000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어요 484 00:34:25.000 --> 00:34:29.699 하지만 필요한 때에 결단할 줄 알았던 사람이에요 485 00:34:29.699 --> 00:34:34.000 그것이 마침내 빌립이라는 위대한 사도를 만들었다 486 00:34:34.000 --> 00:34:37.684 이렇게 전체적으로 정리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487 00:34:43.599 --> 00:34:49.748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계기가 있었나요? 488 00:34:49.748 --> 00:34:59.404 예, 전에도 오기 전에 제자들 이야기 속에서 얘기를 했는데요 489 00:35:00.354 --> 00:35:01.804 (예수님과) 제자들이 490 00:35:01.804 --> 00:35:05.054 사마리아라는 곳을 지나가게 됐어요 491 00:35:05.054 --> 00:35:07.804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492 00:35:07.804 --> 00:35:09.654 사마리아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493 00:35:09.654 --> 00:35:11.648 예수님이 가시고 계신데 494 00:35:11.648 --> 00:35:16.276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냉대한 거예요 495 00:35:16.276 --> 00:35:22.000 그때 요한과 야고보가 496 00:35:22.000 --> 00:35:28.348 "선생님, 저런 사람들에게 불을 내려서 벼락을 내립시다!" 497 00:35:28.348 --> 00:35:31.548 저런 인간들은 가만 두시겠습니까? 498 00:35:31.548 --> 00:35:35.429 그냥 불을 내려서 깨끗이 청소를 해버리시지요 499 00:35:35.429 --> 00:35:37.179 그런 성질 500 00:35:37.179 --> 00:35:40.979 그런 불같은 성격 때문에 '우레의 아들'이라는 501 00:35:40.979 --> 00:35:43.900 별명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502 00:35:46.000 --> 00:35:48.000 좋은 질문이었어요, 또 다른 질문 503 00:35:49.050 --> 00:35:54.650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실 때 504 00:35:54.650 --> 00:35:57.541 특별한 기준이 있으셨나요? 505 00:35:59.241 --> 00:36:04.241 베드로를 선택하실 때나 506 00:36:04.241 --> 00:36:06.441 (예수님께서) 빌립에게 507 00:36:06.441 --> 00:36:10.589 "나를 따르라" 말씀을 하셨잖아요 508 00:36:10.589 --> 00:36:12.489 또 베드로에게도 509 00:36:12.489 --> 00:36:18.050 "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"... 510 00:36:18.050 --> 00:36:22.950 주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511 00:36:22.950 --> 00:36:34.000 미리 그 사람의 모든 갈 길을 알고 하셨는지 512 00:36:34.000 --> 00:36:38.300 아니면 어떤 누구라도 주님께서 513 00:36:38.300 --> 00:36:41.596 바꾸실 능력이 있으셨기 때문에 514 00:36:41.596 --> 00:36:43.196 선택하셨는지 515 00:36:43.346 --> 00:36:45.200 (Q.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신 기준은 무엇일까?) 516 00:36:45.219 --> 00:36:47.169 네, 아주 좋은 질문이죠 517 00:36:47.869 --> 00:36:52.069 열두 제자는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518 00:36:52.069 --> 00:36:54.000 제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519 00:36:55.200 --> 00:36:57.200 아마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520 00:36:57.200 --> 00:37:01.150 다양한 성격, 똑같은 성격이 아니라 521 00:37:01.150 --> 00:37:02.950 다양한 사람들을 522 00:37:02.950 --> 00:37:04.447 부르시지 않았을까 (생각해요) 523 00:37:04.447 --> 00:37:09.016 그리고 우리를 쓰실 때 다양하게 쓰시니까 524 00:37:09.016 --> 00:37:12.372 다양성을 고려하셨을 거고요 525 00:37:12.372 --> 00:37:15.736 베드로에게 처음 하신 말씀은 526 00:37:15.736 --> 00:37:17.786 "나를 따르라"가 아니구요 527 00:37:17.786 --> 00:37:20.000 또 "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" 그게 아니고 528 00:37:20.000 --> 00:37:22.647 그보다 먼저 하신 말씀이 뭐냐면 529 00:37:24.247 --> 00:37:27.147 "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, 530 00:37:27.147 --> 00:37:29.471 장차 게바(베드로)라 하리라" 531 00:37:29.471 --> 00:37:31.608 그 말씀이 처음에 하신 말씀이에요 532 00:37:31.608 --> 00:37:34.547 장차, 지금이 아니라 장차 533 00:37:34.547 --> 00:37:38.000 게바라는 말이 베드로하고 똑같은 말이거든요 534 00:37:38.000 --> 00:37:39.497 그게 반석 535 00:37:39.497 --> 00:37:42.150 그런데 전혀 그건 베드로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536 00:37:42.150 --> 00:37:45.497 베드로는 반석 같은 사람이 아니라 537 00:37:45.497 --> 00:37:48.464 감정적인 사람이고 쉽게 바뀌는 사람이에요 538 00:37:48.464 --> 00:37:53.314 그런데 베드로가 나중에 교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539 00:37:53.314 --> 00:37:55.847 반석 같은 존재가 되리라는 것은 540 00:37:55.847 --> 00:37:58.150 (베드로) 그의 인생의 비전이에요 541 00:37:58.150 --> 00:38:01.050 앞으로 될 것을 바라보시면서 542 00:38:01.050 --> 00:38:05.868 "장차 게바라 하리라"... 이런 것을 보면 543 00:38:05.868 --> 00:38:09.718 예수님께서 각 제자의 배경과 성격을 아시고 544 00:38:09.718 --> 00:38:12.468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쓰시기 위해서 545 00:38:12.468 --> 00:38:17.996 그렇게 부르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546 00:38:19.994 --> 00:38:23.144 요한이 밧모섬에서 547 00:38:23.144 --> 00:38:30.050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받았잖아요 548 00:38:30.050 --> 00:38:33.596 요한이 거기서 생애를 마치는 줄 알았는데 549 00:38:33.796 --> 00:38:41.227 (Q. 요한이 밧모섬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?) 550 00:38:41.227 --> 00:38:52.150 그 당시에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551 00:38:52.150 --> 00:38:54.163 로마 시대에는 황제 숭배했거든요 552 00:38:54.163 --> 00:38:57.863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553 00:38:57.863 --> 00:38:59.896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를 당했고 554 00:38:59.896 --> 00:39:01.496 그래서 요한도 체포를 당해서 555 00:39:01.496 --> 00:39:05.149 밧모섬에까지 유배를 온 거죠 556 00:39:05.149 --> 00:39:07.999 그런데 그 황제가 죽고 557 00:39:07.999 --> 00:39:10.949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면서 558 00:39:10.949 --> 00:39:14.726 요한의 유배령이 풀려요 559 00:39:14.726 --> 00:39:16.976 그러니까 본래 사역하던 곳이 560 00:39:16.976 --> 00:39:20.050 거기에서 멀지 않은 에베소였거든요 561 00:39:20.050 --> 00:39:23.850 지금도 성지 순례 가면 에베소 앞에 562 00:39:23.850 --> 00:39:25.250 쿠사다시라는 항구가 있는데 563 00:39:25.250 --> 00:39:28.946 거기에서 배를 타고 밧모섬으로 가요 564 00:39:28.946 --> 00:39:32.446 밧모섬은 그리스에 속한 령이지만 565 00:39:33.396 --> 00:39:37.696 요한이 에베소로 와서 마지막 사역을 한 거죠 566 00:39:37.696 --> 00:39:40.045 거기에서 요한은 자연사(해요) 567 00:39:40.045 --> 00:39:44.673 거의 100살이 가까운, 정확하게 몰라요 568 00:39:44.673 --> 00:39:47.723 95세에서 100세 사이에 569 00:39:47.723 --> 00:39:49.573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570 00:39:49.573 --> 00:39:52.764 하나님 앞에 가게 되죠 571 00:39:52.764 --> 00:40:01.050 오늘 우리는 두 제자 사도 요한, 그리고 사도 빌립 572 00:40:01.050 --> 00:40:08.000 사랑의 사도 요한, 그리고 신중하고도 완벽했던 사도 빌립 573 00:40:08.000 --> 00:40:12.495 두 사람의 행적을 살펴보았습니다 574 00:40:12.495 --> 00:40:16.000 빌립은 순교했죠? 빌립은 순교합니다 575 00:40:16.000 --> 00:40:18.700 요한은 자연사 했지만 576 00:40:18.700 --> 00:40:20.700 요한은 자연사할 수 밖에 없었던 577 00:40:20.700 --> 00:40:21.745 미션이 있었던 것 같아요 578 00:40:21.745 --> 00:40:24.595 끝까지 마리아도 돌보고 579 00:40:24.595 --> 00:40:29.000 요한계시록도 써야 했으니까요 580 00:40:29.250 --> 00:40:32.200 그러나 각자에게 맞도록 581 00:40:32.200 --> 00:40:38.150 요한은 요한대로 빌립은 빌립대로 한 시대에 쓰임 받고 582 00:40:38.150 --> 00:40:43.495 그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 감당한 것입니다 583 00:40:44.495 --> 00:40:50.000 강력한 메시지도 필요하고 사랑의 메시지도 필요하고 584 00:40:50.000 --> 00:40:56.149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의 요한과 빌립을 필요로 합니다 585 00:40:56.149 --> 00:41:01.000 우리가 요한과 빌립의 교훈을 우리 마음속에 잘 받아들이고 586 00:41:01.000 --> 00:41:07.095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587 00:41:07.095 --> 00:41:08.495 기도하겠습니다 588 00:41:08.495 --> 00:41:10.295 하나님 아버지 589 00:41:10.295 --> 00:41:17.000 감사합니다, 오늘 우리가 사도 요한과 사도 빌립의 생애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590 00:41:17.000 --> 00:41:23.000 우리의 삶이 다하도록 우리 각자의 환경 속에서 부름을 받아 591 00:41:23.000 --> 00:41:27.453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사오니 592 00:41:27.453 --> 00:41:29.603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593 00:41:29.603 --> 00:41:32.903 (다음 시간에는) 주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서서 594 00:41:32.903 --> 00:41:37.000 (4강 <다대오 유다, 나다나엘 편>이 방영됩니다)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595 00:41:37.000 --> 00:41:40.494 후회 없는 결산, 부끄럼 없는 결산으로 596 00:41:40.494 --> 00:41:44.544 인생을 조합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597 00:41:44.544 --> 00:41:48.49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598 00:41:48.499 --> 00:41:50.080 아멘