0 00:00:01.675 --> 00:00:05.675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자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1 00:00:05.675 --> 00:00:09.325 나는 원래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는데 2 00:00:09.325 --> 00:00:14.475 그중에서도 결단코 자폐 아이의 엄마가 될 거라는 상상은 없었다 3 00:00:14.475 --> 00:00:17.925 오히려 가끔 TV에 나오는 엄마들을 보며 4 00:00:17.925 --> 00:00:23.825 나는 저렇게는 못 살 것 같다 라는 괘씸한 생각은 종종 했던 것 같다 5 00:00:23.825 --> 00:00:29.325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그럼 커서 아픈 아이가 태어나면 안 키우고 6 00:00:29.325 --> 00:00:31.275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 7 00:00:31.275 --> 00:00:35.275 물론 그 전제 자체를 안 해서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8 00:00:35.275 --> 00:00:40.075 희수 엄마인 지금은 젊을 적 내가 너무 괘씸하고 궁금하다 9 00:00:40.075 --> 00:00:43.825 결혼을 하기 전에 우리는 딩크를 꿈꾸며 결혼을 했다 10 00:00:43.825 --> 00:00:46.375 서로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11 00:00:46.375 --> 00:00:49.825 나는 누군가를 책임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2 00:00:49.825 --> 00:00:52.125 그게 한 사람을 존재하게 하고 13 00:00:52.125 --> 00:00:54.575 한 인간으로 키우는 일이라면 14 00:00:54.575 --> 00:00:57.575 더더욱 나랑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5 00:00:57.575 --> 00:01:00.625 그리고 우리는 결혼 한 달 만에 임신을 했다 16 00:01:00.625 --> 00:01:03.225 당연히 생각지도 못한 아이였고 17 00:01:03.225 --> 00:01:05.575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 18 00:01:05.575 --> 00:01:08.425 기쁨보다는 얼떨떨함이 더 컸던 것 같다 19 00:01:08.425 --> 00:01:10.075 배부른 투정도 많이 했다 20 00:01:10.075 --> 00:01:11.825 더 놀고 싶었는데 21 00:01:11.825 --> 00:01:13.825 아이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22 00:01:13.825 --> 00:01:17.325 하면서 마냥 행복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인지 23 00:01:17.325 --> 00:01:23.025 아기 집이 보일 시기에도 심장 소리가 들릴 시기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24 00:01:23.025 --> 00:01:25.675 피검사를 며칠 간격으로 하다가 25 00:01:25.675 --> 00:01:29.775 결국 난 쓰러질 정도로 배가 아팠고 피가 보였다 26 00:01:29.775 --> 00:01:35.075 아이는 자궁이 아닌 난소에 자리를 잡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27 00:01:35.075 --> 00:01:38.275 분명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인데도 28 00:01:38.275 --> 00:01:41.875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었다 29 00:01:41.875 --> 00:01:44.975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30 00:01:44.975 --> 00:01:46.625 그리고 많이 울었다 31 00:01:46.625 --> 00:01:49.425 그리고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 32 00:01:49.425 --> 00:01:53.975 미안함인지 죄책감인지 있다 없어진 허무함인지 33 00:01:53.975 --> 00:01:55.975 아니면 집착인지 34 00:01:55.975 --> 00:02:00.725 그렇게 노력을 해도 2년 가까이 임신을 할 수가 없었다 35 00:02:00.725 --> 00:02:05.425 그래서 마지막으로 난임 병원을 갔고 자연 임신은 힘들고 36 00:02:05.425 --> 00:02:10.575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할 것 같대서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37 00:02:10.575 --> 00:02:13.125 2년여간의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38 00:02:13.125 --> 00:02:15.725 더 이상 뭔가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39 00:02:15.725 --> 00:02:18.625 그리고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그 달 40 00:02:18.625 --> 00:02:22.675 희수는 선물처럼 희망처럼 우리한테 왔다 41 00:02:22.675 --> 00:02:25.675 그렇게 어렵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42 00:02:25.675 --> 00:02:28.175 임신과 육아는 너무 힘들어서 43 00:02:28.175 --> 00:02:31.275 복에 겨운 투정이 일상인 나날이었다 44 00:02:31.275 --> 00:02:32.775 아이의 눈맞춤 하나 45 00:02:32.775 --> 00:02:37.025 손짓 하나가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던 그런 생활들 46 00:02:37.025 --> 00:02:39.725 희수는 잘 먹고 잘 커줬고 47 00:02:39.725 --> 00:02:42.675 언제나 평균 이상으로 발달했다 48 00:02:42.675 --> 00:02:44.475 그래서 낳고 나서도 49 00:02:44.475 --> 00:02:49.575 아이가 뭔가 이상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50 00:02:49.575 --> 00:02:55.375 17개월 그때쯤 희수가 엄마, 아빠도 안 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했고 51 00:02:55.375 --> 00:03:00.775 그저 내가 일을 해서 아이가 삐졌나보다 하고 넘어가기엔 뭔가 이상했다 52 00:03:00.775 --> 00:03:06.575 그리고 21개월부터 다녔던 센터 후로 31개월에 대학 병원을 갔을 때 53 00:03:06.575 --> 00:03:10.075 지금은 자폐 진단밖에 내릴 수 없을 것 같다고 54 00:03:10.075 --> 00:03:13.325 장애 진단을 원하면 진단서를 떼가라고 했다 55 00:03:13.325 --> 00:03:17.675 그래, 그렇게 갑자기 나는 자폐 아이의 엄마가 됐다 56 00:03:17.675 --> 00:03:21.575 실감이 안 나고 완치에 대한 사례를 찾아보고 57 00:03:21.575 --> 00:03:26.575 엄마가 어떻게 해서 이제 자폐가 아니라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고 58 00:03:26.575 --> 00:03:32.675 한편으론 자폐인 경우에도 괜찮다는 글이나 잘 자란 사례들을 마구 찾아봤다 59 00:03:32.675 --> 00:03:35.525 정말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60 00:03:35.525 --> 00:03:37.125 잘 커가고 있었는데 왜? 61 00:03:37.125 --> 00:03:44.575 잘 크다가 퇴행이 오는 경우가 흔한 자폐 양상이라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62 00:03:44.575 --> 00:03:48.475 다 했던 걸 못한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63 00:03:48.475 --> 00:03:51.125 내 인생이 끝나는 기분이 들었다 64 00:03:51.125 --> 00:03:55.525 갑자기 내가 꿈꾸던 모든 미래가 산산조각났다 65 00:03:55.525 --> 00:03:58.225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66 00:03:58.225 --> 00:04:01.575 지금부터 노력하면 정상이 될 수 있는지 67 00:04:01.575 --> 00:04:04.075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68 00:04:04.075 --> 00:04:06.325 이제 뭘 해야 하는 건지 69 00:04:06.325 --> 00:04:09.525 더 이상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70 00:04:09.525 --> 00:04:14.325 그 전날만 해도 사랑스럽기만 한 내 아들이 이제는 자폐 아이가 되다니 71 00:04:14.325 --> 00:04:17.575 현실인 걸까 싶기도 했다 72 00:04:17.575 --> 00:04:20.925 미리 짐작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랬다 73 00:04:20.925 --> 00:04:25.675 틈만 나면 찍어냈던 사진도 영상도 찍을 수가 없었다 74 00:04:25.675 --> 00:04:30.775 그때는 아이가 멀쩡해지면, 정상이 되면 다시 찍어야지 75 00:04:30.775 --> 00:04:33.875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기도 했다 76 00:04:33.875 --> 00:04:38.675 희수가 무슨 행동을 하면 예뻐하기보단 검색하기 바빴고 77 00:04:38.675 --> 00:04:42.675 그 행동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78 00:04:42.675 --> 00:04:47.075 말을 하기 시작하면 괜찮아지는 애들이 많다고 하니까 79 00:04:47.075 --> 00:04:50.575 말만 트이면 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80 00:04:50.575 --> 00:04:52.925 그 말마저 늦게 트였고 81 00:04:52.925 --> 00:04:56.525 말이 트이니 오히려 더 인정을 하게 됐다 82 00:04:56.525 --> 00:04:58.475 마음이 차분해졌다 83 00:04:58.475 --> 00:05:01.825 희수는 자폐아이지만 내 아들이었다 84 00:05:01.825 --> 00:05:05.725 자폐아인 희수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고 85 00:05:05.725 --> 00:05:07.625 여전히 내 모든 것이었다 86 00:05:07.625 --> 00:05:11.025 나는 여전히 희수로 인해 웃고 행복했다 87 00:05:11.025 --> 00:05:15.275 오히려 느려서 남들이 지나치는 한마디, 한 가지 행동이 88 00:05:15.275 --> 00:05:20.075 나에게는 어떤 부귀영화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지고 신비로웠다 89 00:05:20.075 --> 00:05:21.925 못 할 줄 알았던 말도 90 00:05:21.925 --> 00:05:26.425 대답도 상호작용도 엄마만 찾는 희수의 모습도 91 00:05:26.425 --> 00:05:28.875 이제 막 자폐 아이의 엄마가 됐을 때는 92 00:05:28.875 --> 00:05:34.425 꿈도 못 꿨던 것들을 해주는 아이를 보면서 지금 너무 행복하다 93 00:05:34.425 --> 00:05:36.675 행복하지 못할 줄 알았다 94 00:05:36.675 --> 00:05:39.575 못 죽으니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95 00:05:39.575 --> 00:05:43.525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냥 내 일부분이 되고 96 00:05:43.525 --> 00:05:45.525 내 삶의 한 부분이 된다 97 00:05:45.525 --> 00:05:47.625 전에도 나는 그저 살아갔다 98 00:05:47.625 --> 00:05:55.675 하루하루 행복하면 됐지 뭐 하며 큰 욕심없이 자잘한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았다 99 00:05:55.675 --> 00:05:58.725 지금은 그때보다 더 행복하다 100 00:05:58.725 --> 00:06:04.275 믿기지 않게도 희수로 인해서 내 삶의 가치가 훨씬 더 커진 느낌이다 101 00:06:04.275 --> 00:06:08.775 나로 인해 변해가는 희수를 보며 내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됐다 102 00:06:08.775 --> 00:06:15.125 희수의 변화들이 그 어떤 것들보다 나를 행복하고 벅차오르게 한다 103 00:06:15.125 --> 00:06:18.725 만약에 지금 이 영상을 보는 누군가가 104 00:06:18.725 --> 00:06:21.525 이제 막 진단을 받은 엄마라면 105 00:06:21.525 --> 00:06:24.925 우리가 서있는 길은 낭떠러지 같지만 106 00:06:24.925 --> 00:06:29.475 막상 발을 디뎌보면 평지보다 살짝 낮은 정도였다고 107 00:06:29.475 --> 00:06:33.675 어쩌면 우리는 남과 같은 길을 평생 가지 못할 수 있지만 108 00:06:33.675 --> 00:06:35.775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가며 109 00:06:35.775 --> 00:06:39.775 또 다른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110 00:06:39.775 --> 00:06:42.975 아직 나도 신입 자폐 아이의 엄마다 111 00:06:42.975 --> 00:06:47.175 그래서 미래까지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 줄 수는 없지만 112 00:06:47.175 --> 00:06:49.075 이제 내 꿈은 바뀌어서 113 00:06:49.075 --> 00:06:53.275 오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우리는 괜찮을 수 있다고 114 00:06:53.275 --> 00:06:56.375 다시 한번 말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115 00:06:56.375 --> 00:06:59.675 나는 갑자기 자폐 아이의 엄마가 됐다 116 00:06:59.675 --> 00:07:05.250 그리고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